Thursday, March 10, 2011

기상곡 - 클래식 입문 ABC

기상곡

클래식 음악회에선 대개 교향곡이나 소나타 같은 진지한 장르의 작품들이 주로 연주됩니다. 이런 작품의 전곡 연주 시간은 2·30분을 훌쩍 넘기는 건 보통이고 때에 따라선 1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 악장으로 이루어진 소나타나 교향곡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대단한 집중력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소품의 경우는 큰 노력 없이도 음악을 즐기기가 쉽습니다. 곡의 길이가 길지 않고 선율의 아름다움이나 리듬의 개성이 곧바로 다가오니까요.

실제로 인기 있는 클래식 음악작품들 중엔 짧은 소품들이 많습니다. 서정적인 멜로디로 유명한 엘가의 [사랑의 인사]나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를 들어보세요. 처음 들어도 그 선율이 귀에 쏙 들어오고 즉각적인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또 대개 춤곡이거나 혹은 엄격한 형식을 갖추지 않은 자유로운 음악인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곡 제목도 각양각색입니다. 그런가 하면 환상곡이나 야상곡, 광시곡, 스케르초 등 특정 음악장르에 속하는 곡들도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소품들 가운데서도 ‘기상곡’(奇想曲)이라 불리는 음악은 매우 독특합니다.



짧고 경쾌하며 즉흥적이고 환상적인 곡
‘기상곡’은 ‘카프리치오’(capriccio), 혹은 ‘카프리스’(caprice)라고도 하는데, 정확하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특이한 음악입니다. ‘정해진 것이 없는 것’이 기상곡의 특성이라고나 할까요. 카프리치오라는 말 자체에도 ‘변덕스럽다’거나 혹은 ‘일시적인 기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보통 짧고 경쾌하며 즉흥적이고 환상적인 기악곡을 기상곡이라고 하지만, 시대에 따라서 그 의미는 많이 다릅니다.

‘기상곡’이라는 용어가 음악사에 처음 등장한 것이 16세기 후반이니 기상곡의 역사는 꽤 오래됐습니다. 처음 기상곡이란 용어가 나타났을 당시에는 기악곡뿐 아니라 성악곡까지 아우르는 각종 음악작품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그러니 기상곡을 단지 기악곡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딱히 어떤 곡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기상곡’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음악적인 표현을 위해서라면 형식이나 규칙도 무시하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즉흥적인 감흥을 전하는 것이지요. ‘변덕’과 ‘즉흥’, 이것이야말로 기상곡의 핵심입니다. 시대가 지나도 기상곡의 자유분방함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17세기에는 주로 건반악기 독주를 위한 기상곡이 많이 작곡됐는데 하나같이 환상적이고 기교적이며 화려한 작품들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음악이론가 프레토리우스는 기상곡에 대해 “갑자기 변덕을 부리며 마음 닿는 대로 움직이는 음악”이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기상곡은 경쾌하고 변덕스러우며 순간적인 감흥을 마음껏 그려내는 형식이다.
<출처: NGD>

‘기상곡’이란 용어가 사용된 음악작품의 종류 또한 대단히 다양합니다. 때로는 춤곡을 가리키기도 했고 협주곡이나 독주 소나타의 ‘카덴차’(cadenza)를 가리키기도 했으니까요. 그중 카덴차를 기상곡이라 불렀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본래 ‘카덴차’란 협주곡에서 독주자의 기교를 마음껏 과시하는 무반주 독주 부분을 뜻하지만, 그 즉흥적이고 기교적이며 화려한 특징은 기상곡과 참 많이 닮았으니 카덴차를 기상곡이라 부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로카텔리는 자신의 바이올린협주곡 ‘바이올린의 기술’을 위한 12개의 카덴차를 ‘카프리치오’ 즉 기상곡이라 불렀고, [악마의 트릴] 소나타로 유명한 타르티니와 이탈리아 바이올린의 거장이었던 베라치니도 카덴차 풍의 기상곡을 작곡했습니다.



기교적 기상곡의 전통 – 파가니니
기교적인 기상곡의 전통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24개의 기상곡(이 곡은 흔히 ‘파가니니 카프리스’라 부릅니다)으로 이어졌습니다. 파가니니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과 잘 어울리게 바이올린의 온갖 기교를 24곡의 기상곡에 자유분방하게 펼쳐놓았습니다. 이 작품은 바이올린이란 악기가 소리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가능성을 소리로 구현해낸 바이올린 기교의 경전이라 할 만합니다.

no아티스트/연주 
1파가니니 - [카프리스] 작품 1 24번 - 마이클 래빈, 1958듣기
2생상 -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 하이페츠, 존 바비롤리,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35듣기


19세기에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기상곡이 나타나면서 기상곡은 더욱 화려해졌습니다. 관현악곡으로 작곡된 기상곡들 중에는 멘델스존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화려한 기상곡]이나 생상스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처럼 독주 악기의 불꽃 튀는 기교가 재치 있게 드러나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중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는 기상곡 풍의 변덕스런 특징과 더불어 갖가지 바이올린의 기교가 녹아들고 있어 매우 인기 있는 작품입니다. 게다가 곡의 도입부에선 감상적이고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는 느린 ‘서주’도 들을 수 있어서 바이올린의 매력이 돋보입니다.

아마도 이 곡이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하는 음악이 된 것도 서정성과 기교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기상곡 풍으로 된 ‘론도’ 부분의 주제를 들어보면 리듬이 재미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규칙적으로 맥박이 뛰는 것처럼 일정한 박을 연주하면 바이올린은 그것을 절묘하게 비껴가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 그 교묘한 리듬의 엇갈림이야말로 기상곡의 변덕스러운 장난기를 느끼게 하는 부분입니다. 이 리듬은 어딘지 스페인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전해주기도 하는데, 아마도 생상스는 스페인 출신의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사라사테를 위해 작곡한 이 곡에 스페인 풍 리듬을 사용해 사라사테에게 경의를 표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기상곡은 또한 바이올린과 같은 독주악기를 통해 기교적 감흥을 마음껏 발산한다. <출처: NG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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