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10, 2011

봄바람이여, 어째서 나를 깨우는가 - 마스네,[베르테르]

봄바람이여

1851년 런던에서 제1회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어 각국의 산업〮문화 교류가 빈번해지고 생활수준도 향상되는 가운데 시민 계급의 취미도 다양화되어간다. 19세기는 낭만주의에 대한 동경도 크게 부풀은 시대였다. 이와 같은 ‘낭만주의의 극치’라고 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은 큰 지지를 얻었다. [베르테르]의 모델은 괴테 자신과 그의 친구이며 남의 아내와 못 이룰 사랑을 하다 자살한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즉 호후만(호프만, 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과는 다른 형태로 “사랑을 예술의 토양으로 삼을 줄” 알았던 괴테와 “죽는 일이 낭만의 성취”라고 생각하는 예루살렘의 이면성(二面性)이 갖추어진 인물이다. 괴테는 자기투영이라기보다 친구 예루살렘에 대한 헌사(獻辭)를 담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지 않았을까? 베르테르는 같은 시인이라도 “사랑에 의해 눈물로 성장(成長)한다” 식의 건설적인 사고회로를 가지지 못하고 사랑에 취한 나머지 파멸의 길을 가는 인물이다. 제3막의 아리아 ‘(오시안의 노래) 봄바람이여, 어째서 나를 깨우는가’를 남의 아내 샤를로트(Charlotte)에게 노래하여 들려주고 일부러 샤를로트의 남편 알베르의 권총을 빌려 자살하는 따위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뻔뻔하고 음습(陰濕)한 느낌마저 든다. 괴테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오페라로 만든 것이 이 [베르테르]이며 블로(Edouard Blau), 밀리에(Paul Milliet) 그리고 아르트만(Georges Hartman)이 전4막의 대본으로 썼다. 한가지에만 골몰한 한 독일 청년의 사상을 캐고 들어간 이야기라기보다는 마스네의 감미로운 음악으로 채색된 사랑과 죽음의 드라마가 되었다. 그 불란서적인 섬세함에 그만 심취하고 만다.



괴테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오페라로 만든 작품
1780년대 독일 후랑크후르트(프랑크푸르트)의 교외이다. 대법관의 딸 샤를로트(Charlotte)는 여동생 소휘(소피, Sophie)에게 집을 맡긴 뒤, 찾아온 사촌 오빠 베르테르(Werther)와 무도회에 간다. 그들이 나간 동안에 샤를로트의 약혼자인 알베르(Albert)가 반년 만에 돌아왔음을 알고 베르테르는 실망한다. 알베르와 샤를로트 부부를 보고 베르테르의 고민은 계속되지만, 알베르는 우정(友情)을 보이며 소휘와 결혼하라고 암시한다. 베르테르는 샤를로트를 잊지 못해 그녀에게 괴로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샤를로트가 감정에 흐르지 않고 이성적(理性的)으로 대하므로 베르테르는 절망하고 그녀와의 영원한 결별을 결심하며 소휘에게 그 뜻을 말하고 가버린다. 샤를로트는 충격을 받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행을 떠난 베르테르로부터의 ‘사랑의 편지’를 받아보고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때 창백한 얼굴로 베르테르가 들어온다. 격렬한 사랑의 고백을 듣고 샤를로트는 감동한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의 처지를 깨달은 그녀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난다. 자살을 결심하는 베르테르. 여행을 떠나므로 권총을 빌려달라는 베르테르의 메모를 받은 알베르는 하인에게 주게 한다. 불안해진 샤를로트가 그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그녀가 베르테르의 방에서 본 것은 죽어가는 그의 모습이다. 사람을 부르려고 하는 그녀를 제지하고 그대로 보내 달라, 그리고 골짜기에 묻고 남모르게 성묘를 해달라고 말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샤를로트. 밖에서는 어린이들의 크리스마스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베르테르]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오페라로 만든 사랑과 죽음의 드라마이다.


no아티스트/연주 
1봄바람이여, 어째서 나를 깨우는가 Pourquoi me réveiller / 로베르토 알라냐(테너)듣기
2011년 3월 7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워너뮤직코리아


Massenet, [Werther]
'Pourquoi me réveiller'
Pourquoi me réveiller, ô souffle du Printemps?
Sur mon front je sens tes caresses,
Et pourtant bien proche est le temps
Des orages et des tristesses!
Pourquoi me réveiller, ô souffle du Printemps?

Demain, dans le vallon, viendra le voyageur,
Se souvenant de ma gloire première
Et ses yeux vainement chercheront ma splendeur;
Ils ne trouveront plus que deuil et que misère!
Hélas! Pourquoi me réveiller, ô souffle du Printemps?
마스네, [베르테르]
‘봄바람이여, 어째서 나를 깨우는가’
어째서 나를 깨우는가, 봄바람이여?
내 얼굴에 미풍은 부드럽게 와 닿지만,
허나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우수(憂愁)의 시간은 다가온다!
어째서 나를 깨우는가, 봄바람이여?

내일 방랑자는 이 골짜기를 찾아와,
나의 지난날의
영화(榮華)에 대한 추억은 찾은들
내 영광은 여기 없고
남은 것은 오직 애수(哀愁)와 비참 뿐!
슬프다! 어째서 나를 깨우는가,
봄바람이여?
* 일부 중복 가사를 생략하였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샤를로트를 찾아간 베르테르가 책상 위에 있는 [오시안의 시집]을 펴고 그 시에 마음을 담아, 하프의 분산화음(分散和音)으로 감싸인 채 노래하는 달콤한 아리아이다. 오시안(Ossian)은 3세기경의 장님 노시인(老詩人)이며 그가 쓴 고졸(古拙)하고 신비스런 담시(譚詩)를 스코틀랜드의 시인인 맥훠슨(맥퍼슨, James Macpherson, 1737-96)이 발견하고 영역(英譯)하여 전 유럽에 선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괴테는 학생시대에 심취하여 독일어로 번역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번역한 [오시안의 노래]몇 장(章)을 읽어준다. 고대 영웅의 예스런 싸움과 사랑 이야기이며 꽤 긴 그 시에 샤를로트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고 베르테르는 그녀를 한층 부추기듯이 끝에 가서 낭독하는 것이 “어째서 봄바람이여”라는 단시(短詩)이다. 늙은 음유시인 베라송이 죽기 전에 자기 자신을 노목(老木)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의 일절(一節)이지만, 대본의 시에서는 이들 전제(前提)와 비유는 뒤에 미루어 놓고 있다. 청년이 자기동일화로 노래하는 가사로서는 당연한 조치이며 묘지에 누운 자가 자기가 죽은 뒤에 찾아오는 자를 향해 노래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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