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10, 2011

지휘자란 무엇인가?

지휘의 역사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대 앞쪽 중앙에서 뒤돌아선 채 쉴 새 없이 팔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이지요. ‘지휘자’라고 부르는 이 사람의 존재는 항상 청중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대체 저 사람은 하는 일이 뭐지?” 문득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지휘자는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니 연주자라고 할 수 없지요. 그러면서도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박수도 제일 많이 받고 스타 대접을 받습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 연습 시간이나 공연 중의 지휘자의 지시 하나하나는 마치 군대의 총사령관의 명령만큼이나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이렇게 불평하기도 합니다. “자기는 소리도 안내면서 웬 잔소리가 그리 많담.” 지휘자는 고음을 부드럽게 소리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도 없고 플랫과 샤프가 붙은 음표들을 정확하게 연주해내느라 손가락이 꼬이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단원들 입장에선 소리 하나 안내며 단원들에게 지시하기만 하는 지휘자가 때로는 얄밉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잠시 불평을 하던 단원들도 곧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연주를 계속합니다. 지휘자란 성공적인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전문 지휘자는 언제 등장했을까? 지휘의 역할은?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은 전문적인 직업 지휘자를 자신의 악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걸까요? 지휘자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전문적인 직업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지금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작고 음악이 복잡하지 않았던 옛 음악에선 지휘자 없이 연주자들끼리 박자를 맞추고 신호를 주고받으면서도 얼마든지 좋은 연주가 가능했어요.

12명에서 15명 정도로 구성되는 17세기 실내 오케스트라에선 쳄발로 연주자가 단원들을 이끌어가며 지휘자 역할을 하며 단원들을 연습시키고 공연 중에 앙상블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는데, 대개 쳄발로 연주는 그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가 맡아서 지휘하곤 했습니다. 비발디나 바흐, 헨델, 그리고 젊은 시절의 하이든도 이런 식으로 작업을 했지요.

하지만 당시의 지휘자는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전문적인 직업 지휘자와는 달리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는 데다, 작곡가이자 연주가이자 지휘자라는 ‘1인 3역’을 해내야 했기 때문에 지휘 동작 자체도 단순했습니다. 약박에서 손을 올리고 강박에서 손을 내려 긋는 지휘법의 기본 동작을 바탕으로 간혹 중요한 부분에서 음악적인 표현을 이끌어내는 정도였지요.

지휘자는 템포와 박자 조절 외에도 다양한 음악적 표현에 대한 책임을 맡는다.

이런 식의 기본적인 지휘법은 이미 중세 초기에 성가대의 음악 감독도 행하던 지휘법이었습니다. 당시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던 음악감독은 손을 올리거나 내려 긋는 동작이나 성가의 음악적 굴곡과 흐름을 전하기 위한 부드러운 손동작을 구사하며 합창을 이끌어갔다고 합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지휘봉이 사용되기는 했으나 오늘날처럼 날렵한 모양은 아니고 지휘봉과 막대의 중간 정도 되었다고 하는군요. 중세의 합창 지휘 방식은 후에 오케스트라가 발전하고 관현악이 발전하게 된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지휘법의 기본적인 원칙의 바탕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박자 맞추는 것 외에 음악을 해석, 표현하는 책임
15·16세기에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음악의 표현력이 풍부해지자 사람들은 음악의 템포를 계속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은 가사의 묘사력에 따라 정서적, 감정적으로 변화해야하고, 음악의 템포도 이에 따라 유동적으로 흘러야 한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었어요. 따라서 지휘에 대한 통념도 변하게 되면서 지휘 방식에 좀 더 융통성이 생기게 되고, 지휘자는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것이 그치지 않고 음악을 ‘해석’하고 적절하게 ‘표현’해내는 책임까지 떠맡게 됩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궁정악단을 이끈 음악가 륄리는 오케스트라를 효율적으로 연습시키고 음악작품을 설득력 있게 해석해낸 훌륭한 지휘자였습니다. 그는 긴 지팡이처럼 생긴 지휘봉으로 바닥을 두드려 템포를 유지하며 단원들을 이끌었는데, 바로 이 지휘봉이 그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큰 지팡이처럼 생긴 지휘봉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치며 지휘하던 륄리는 지휘봉으로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사고로 륄리는 발이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렸으나 발을 절단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뛰어난 무용수이기도 했던 그는 무용을 하지 못하게 되느니 차라리 발을 절단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루이 14세 궁정악단의 음악가이자 지휘자 장 밥티스트 륄리. 
<출처: wikipedia>

륄리 이후 독일의 만하임을 중심으로 근대적인 오케스트라가 그 모습을 갖추고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관현악이 나타나게 되자 지휘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전보다 더 효율적인 지휘법이 연구되면서 다양한 지휘 방식이 도입됩니다. 그래서 합창지휘를 할 때는 선창자가 휘두르던 막대기를 없애는 대신 손으로 지휘하며 부드러운 선율선을 살려냈고, 오케스트라에선 쳄발로 주자 외에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지휘자의 역할을 하면서 지휘봉 대신 활로 지휘를 하며 단원들을 리드했습니다. 그래서 18세기의 오페라가 공연되던 극장에서는 종종 두 사람이 지휘자의 역할을 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한사람의 지휘자는 쳄발로 앞에 앉아 레치타티보를 반주하면서 주로 성악 파트를 지휘했고, 또 한 사람의 지휘자인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잘 맞춰서 연주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지휘자의 음악관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
19세기에 들어와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커지고 음악이 더욱 복잡해지면서 지휘만 전담하는 전문적인 지휘자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베토벤의 교향곡은 지휘자의 비중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베토벤 교향곡의 복잡한 성부 구조와 갑작스런 음량 변화 등을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악장의 지시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 당시부터 지휘자가 단원들 앞에 서서 지휘봉을 휘두르며 연습을 시키고, 음악의 세밀한 부분의 해석을 지시하며 성공적인 연주를 위해 전체 오케스트라를 통솔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의 뛰어난 지휘자는 대개 작곡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베토벤 역시 종종 자신의 작품을 지휘했고 대단히 표현력이 풍부한 지휘자였으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데다 지휘하는 도중 흥분을 잘 하는 성격이었기에 공연 중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19세기에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전문지휘자의 역량이 요구되었다. 
<출처: NGD>
  
하지만 그의 주요 교향곡들은 대부분 그 자신의 지휘에 의해 성공적으로 초연되었습니다. 특히 [교향곡 7번]에서 베토벤의 격정적인 지휘는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시 오케스트라의 부악장을 맡아 공연에 차여했던 슈포어의 증언에 따르면 베토벤은 “악센트가 나올 때 그는 팔을 잡아채듯 흔들었으며 여린 부분에선 그는 몸은 낮게 구부렸고, 포르테에 도달했을 때 그는 공중으로 껑충 뛰어올랐다”고 하는데, 이는 베토벤이 음악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온몸으로 지휘하는 지휘자였음을 입증해줍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도 했던 멘델스존은 깔끔하고 정교한 지휘로 음악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특히 음악이 시작할 때 지휘봉을 흔들어 박을 주는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멘델스존의 우아하고 고전적이 성향과 빠르고 활기찬 템포감각, 오케스트라의 밝은 음향을 당대 청중을 사로잡았습니다.

멘델스존, 바그너, 베를리오즈(왼쪽부터)는 각기 다른 스타일의 지휘로 천차만별의 음악을 선보였다. <출처: wikipedia>



멘델스존, 바그너, 베를리오즈의 상반된 지휘 스타일

바그너 역시 훌륭한 지휘자였으나 멘델스존의 지휘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구사했던 지휘자였습니다. 바그너는 “선율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야 맞는 박자를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던 지휘자로 선율의 흐름과 함께 박의 성격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는 정확한 박을 알려주는 ‘메트로놈’이란 기계를 비음악적이라 여기고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때는 메트로놈의 존재를 완전히 잊은 채 작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그너가 지휘대에 서면 음악의 성격과 선율의 흐름에 따라 템포가 자유분방하게 변하면서 밑바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폭풍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고 합니다. 바그너의 지휘는 청중을 매료시켰지만, 정확성을 추구하는 지휘자들에겐 비난 받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템포와 밝은 음향을 추구했던 베를리오즈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바그너의 지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바그너의 음악을 “느슨하게 늘어진 밧줄 위에서 추는 춤 같다”고 비난했지요. 반면 바그너는 베를리오즈가 런던에서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가리켜 “저급한 박자 기계”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같은 음악작품이라도 지휘자의 음악관과 개성에 따라 표현된 음악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으니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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