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10, 2011

금관악기 :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

금관악기 연주자들은 오케스트라의 뒤쪽에 앉아 있지만 그들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커다란 악기를 들고 있으니 아무리 뒤에 있어도 잘 보일 수밖에요. 어쩌다 금관악기 연주자가 커다란 악기를 높이 쳐들고 크고 멋진 소리라도 들려준다면 그 화려한 악기로부터 시선을 뗄 수 없게 됩니다. 번쩍이는 황금색만큼이나 돋보이는 음색의 금관악기에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강하고 화려한 소리로 웅장한 관현악 사운드를 완성해내는 금관악기는 관현악곡에서 독주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닙니다. 플루트나 클라리넷이 중요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든든한 화음으로 받쳐주며 조연에 머무르는 것이 보통이지요. 하지만 일단 금관악기가 나서서 멋진 솔로를 연주하기만 하면 현악기든 목관악기든 그 황홀한 황금빛 아름다움에 모두 빛을 잃습니다.



숨 막히듯 아름다운 호른의 솔로
금관악기의 솔로는 모두 특별하지만 오케스트라의 호른 솔로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습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1악장 개시 부분에서 호른이 우주의 울림을 담은 듯 깊이 있는 멜로디를 연주할 때면 현악기 연주자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호른의 심오한 멜로디를 잔잔한 트레몰로로 장식하며 그 숨 막히는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합니다.

사실 호른은 트럼펫이나 트롬본 같은 다른 금관악기에 비해 그 음색이 부드러운 편입니다. 그래서 호른은 목관악기군과 금관악기군 사이를 중재하며 부드럽고 풍부한 소리로 관악기군 전체를 통일된 음색으로 다듬어내곤 하지요. 그런 까닭인지 보통의 관현악곡을 연주할 때 호른 연주자의 수는 대개 목관악기 한 파트 연주자 수의 배수 정도로 좀 많은 편이에요.

호른이 깊은 울림을 지닌 것은 아마도 관의 길이가 매우 길기 때문일 겁니다. 호른은 관이 매우 길기 때문에 둥글게 감아놓지 않으면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해서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연주하기가 어렵지요. 호른의 관을 다 펴면 거의 5미터 가까이나 된다고 하니 그 긴 관 속에 숨을 불어넣어야 하는 호른 주자가 얼마나 힘이 들지 짐작이 가는군요.

프렌치 호른을 연주하는 모습

그래서 호른을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단 호른을 제대로 연주하기만 하면 그 깊은 울림과 풍부한 표현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호른의 부드러운 매력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2악장의 유명한 솔로와 라벨의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의 멜로디에서 돋보입니다. 쓸쓸히 울려 퍼지는 기품 있는 호른의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지요. 부드러운 음색은 호른의 매력이지만 호른이 항상 부드럽기만 한 건 아닙니다. 본래 옛날 호른은 사냥할 때 쓰던 악기였기 때문에 사냥을 떠나듯 흥겹고 신나는 분위기를 나타낼 때도 종종 등장합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3번] 3악장의 트리오 부분을 들어보면 세 대의 호른이 연주하는 활기찬 사냥음악에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no아티스트/연주 
1브루크너 [교향곡 제4번] 1악장 도입부 - 한스 크나퍼츠부쉬, 빈 필하모닉, 1955년듣기
2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2악장 도입부 - 레오폴트 스토콥스키,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1952년듣기
3베토벤 [교향곡 제3번] 3악장 트리오 도입부 - 오토 클렘페러, 쾰른 방송교향악단, 1954년듣기



영웅의 풍모를 닮은 호른의 호방한 소리
호른은 사냥 음악뿐 아니라 영웅적인 음악에도 종종 등장합니다. 가슴이 확 트이듯 쭉 뻗어나가는 호른 소리는 영웅의 호방한 기질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당하기 때문이지요. 호른의 영웅적 측면에 특히 주목했던 작곡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입니다. 슈트라우스가 그의 교향시에서 호른을 무척 멋있게 쓴 것은 아마도 그의 부친이 뛰어난 호른 연주자였던 탓도 있었겠지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연주하시는 멋진 소리를 들으며 자란 슈트라우스에게 있어 호른이란 악기는 가장 멋있고 훌륭한 악기였을 거예요.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에서 영웅의 테마는 당연히 호른으로 연주됩니다. 호른과 첼로의 음색을 섞어 저 위로 솟아오르는 환희에 찬 멜로디는 영웅의 씩씩한 기상을 표현하게 부족함이 없지요. 또 교향시 [돈 후안]에서도 주인공 돈 후안 영웅적인 면모는 시원한 호른 연주로 표현되는데, 이 시원한 호른 연주는 듣기만 해도 속이 다 후련해집니다.

슈트라우스 못지않게 호른을 좋아했던 작곡가 브람스는 그가 오랜 세월 동안 고심해서 완성해낸 [교향곡 1번] 4악장의 결정적인 순간에 호른을 등장시킵니다. 어딘지 답답하고 우울한 느낌의 4악장 도입부를 지나면 가슴이 확 트이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현의 물결치는 듯한 반주를 타고 흐르는 호른의 멜로디는 우리 가슴을 적시며 큰 감동을 전해줍니다.

호른의 소리는 영웅의 당당한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테마는 브람스가 평생을 사랑해온 클라라 슈만과 관련이 있어서 더 의미심장합니다. 1868년에 브람스는 클라라의 영명 축일에 맞추어 이 호른의 테마를 엽서에 적어 클라라에게 보내며 “산보다 높이, 골짜기보다 깊이, 나는 당신에게 천 번의 인사를 보냅니다”라는 말을 곁들여 그녀에 대한 마음을 호른 선율에 담았지요. 브람스는 [교향곡 1번]에서 고통이 환희로 바뀌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클라라에게 보낸 호른의 선율을 사용해서 클라라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음악으로 전했습니다.

no아티스트/연주 
1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 후안] - 프리츠 라이너, 시카고 심포니오케스트라, 1954년듣기
2브람스 [교향곡 제1번] 4악장의 호른 테마 - 샤를르 뮌슈, 파리 관현악단, 1968년듣기



강렬하게 빛나는 트럼펫의 찬란한 소리
호른의 풍부한 음색이 오케스트라 소리를 감싸준다면, 트럼펫은 찬란한 소리로 오케스트라에 강렬한 빛을 부여합니다. 사실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 솔로만큼 폼 나는 것도 업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트럼펫 주자가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 4악장이나 [교향곡 8번] 4악장의 팡파르를 연주할 때면 다른 단원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게 되지요. 그 밝고 화려한 세련미와 모든 소리를 뚫고 나오는 자극적인 음색으로 가슴 벅찬 환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단연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4악장과 같이 승리와 환희의 느낌을 표현할 때마다 트럼펫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지요.

때때로 자극적인 트럼펫의 음색은 처참하고 비극적인 이미지와도 참 잘 어울립니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트럼펫의 비극성을 알아채고 그의 [교향곡 5번] 1악장을 여는 비극적인 장송 팡파르를 트럼펫으로 연주하게 합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색을 가진 트럼펫의 소리

이처럼 트럼펫은 강함, 남성다움, 용기와 관련되는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때때로 ‘비굴함’과 같은 전혀 다른 성격을 잘 표현해내기도 합니다. 라벨이 관현악으로 편곡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중 제 6곡이 좋은 예가 되지요.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시뮐레’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은 부유한 골덴베르크와 가난한 시뮐레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부유하고 교만한 골덴베르크의 호령에 꼼짝 못하고 굽실거리면서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시뮐레의 말투는 약음기 낀 트럼펫 솔로로 실감나게 표현됩니다. 약음기를 낀 트럼펫의 가냘프고 날카로운 소리는 강한 비음이 섞인 사람 목소리와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약음기 낀 트럼펫으로 표현된 시밀리의 선율을 듣다보면 굽실거리며 비굴하게 구는 시뮐레의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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