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뵘의 이러한 행동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음악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빈 필의 명 콘서트마스터 게르하르트 헤첼 등 실력 있는 단원들이 뵘에게 보낸 신뢰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한다. 오페라 무대에서 뵘에게 인정받아 이른바 ‘뵘 패밀리’로 불리던 가수들은 뵘이 지휘하는 오페라 제작에서 연습에서 실전까지 일관성을 띠고 변하지 않는 이상적인 연주 상태를 실현해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 오페라 최고의 가수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카라얀 지휘 오페라에도 단골로 출연했다.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리자 델라 카사, 에디트 마티스, 에디타 그루베로바, 루치아 폽, 비르기트 닐손, 귀네트 존스,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 페터 슈라이어, 볼프강 빈트가센,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헤르만 프라이, 발터 베리 등이 ‘뵘 패밀리’에 속한다.
뵘이 남긴 방대한 레코딩 유산 베를린 필을 지휘하여 DG에서 1960년대 모차르트 교향곡 전집과 빈 필을 지휘하여 1971년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남긴 것은 뵘의 큰 업적이다. 1955~1956년 에리히 라인스도르프 지휘 로열 필이 첫 테이프를 끊기는 했지만 뵘이 견고한 리듬으로 이끈 모차르트의 교향곡 전곡 녹음은 클래식 음악계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또 뵘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분야는 오페라였다. 특히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 피리] 등은 놓칠 수 없는 일류의 해석이다. 테너 페터 슈라이어는 뵘의 [코지 판 투테]를 극찬하고 “다른 지휘자 아래서는 이 정도의 감격을 맛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1971년 빈 필과 녹음한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죽음을 앞둔 모차르트의 진심을 그대로 투과시키는 깊이 있는 해석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명연이다.
모차르트의 작품 외에도 뵘이 해석한 슈베르트, 바그너, 브루크너, 브람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들은 한질의 교과서로 평가된다. 소박하고 우직한 슈베르트와 브루크너 교향곡 해석, 고전적 조형감이 뛰어난 브람스 교향곡들은 필수적으로 구비해야 할 음반들이다. 뵘의 활기있고 꾸밈없는 바그너 해석 방식은 헤아릴 수 없는 지지자들을 낳았다. 비르기트 닐손은 "지금까지 33명의 지휘자와 함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노래했지만, 그 누구도 뵘에 비견할 만한 분은 없었다"고 쓰고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들에 숨결을 불어넣은 것은 뵘이 음악사에 남긴 업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일 중 하나다. 뵘은 자신에게 헌정된 슈트라우스 오페라 [말없는 여인](1935), [다프네](1938)의 초연을 이끌었으며, 슈트라우스 주요작들을 모두 녹음했다(가끔 스코어에 삭제를 가하기도 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물론 빈과 드레스덴에서 지휘할 무렵 정기적으로 슈트라우스 오페라를 강력한 캐스팅으로 공연하곤 했다. 뵘의 슈트라우스 해석은 루돌프 켐페의 지휘와 더불어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대중적이지 않은 분야이긴 하지만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 [룰루] 등이 오늘날 같은 명성을 얻기 이전부터 뵘은 최고의 해석가로 인정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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